이 일을 겪으며 앨리스는 자신이 단일한 사람이 아님을 상기했다. 내력과 생활 방식이 같은 복제 인간 수백 명이 런던, 파리나 뉴욕을 돌아다닌다는 뜻이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에 따라서 그녀가 다른 사람이 된다는 뜻이었다. 더욱이 그중 어떤 모습은 다른 경우보다 더 낫고 더 그녀답기도 했다.
마침 에릭과 그녀가 휴가 중에 찍은 사진이 나와서, 저녁 식사 후에 둘은 거실에서 사진을 보았다. 바베이도스 스냅 사진 중에 방갈로 바깥 베란다에서 찍은 장면이 있었다. 살빛으로 보아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찍은 사진이었다.
"이것 좀 봐요. 당신 멋지게 나왔네."
에릭이 말했다.
"근사해 보여요."
"괴물 같은걸요. 나 같지가 않아요. 정말 이상해요."
에릭이 사진 속의 그녀를 잘못 본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평소의 표정(잔인한 사진관에서 수정해준 게 아니라)을 짓고 있었다. 잘못나온 사진인 아니라, 다만 그녀에게 익숙지 않은 표정일 뿐 이었다. 내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은 표정.
그녀의 반응에서 올바른 '나'에 대한 어떤 관념이 드러난다. 과거의 어떤 사진도, 바베이도스의 방갈로에서 찍은 다른 사진도 진정 자신 답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셀프타이머가 포작한 외모의 단면을(그리고 넓게 보면 그녀 본성의 한 측면을)자기 모습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런 웃음을 지으려 한 적이 없었고, 이런 식으로 뺨을 붉히는 것도 낯설었으며, 바람에 머리가 이렇게 휘날리는 줄 몰랐다-말 그래도 사진기의 속임수였고, 그녀는 사진기가 주제넘게 이런 모습을 자신의 것으로 갖다 붙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사랑일까, 알랭 드 보통
내가 사랑에 관한 소설을 소화시키지 못할때마다 '아 진땡 사랑을 못해봤구나...'하믄서 절망. 보통 소설도 힘든 내 저질감성 ㅠㅠ
답글삭제아 근데 알랭 드 보통은 너무 어렵게 말을 꼬아놔서 보는동안 머리빠지는줄알았어..내 머리의 한계를 느꼈..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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